[길에서 만난 세상] “엄마는 많을수록 좋은 거란다” | 글 김곰치 사진 한금선
부모와 가족, 사회와 국가가 아이들에게 줘야 할 것은 사랑이다. 그래서 엄마는 많을수록, 즉 사랑은 많을수록 좋다. 모든 구성원이 서로에게 사랑을 주고 사는 사회는, 진정 엄마가 많은 사회일 것이다.
“1%의 희망이 없을 때까지 돌봐야죠”
강진희 씨가 설명해주었다. “부모가 갑자기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여러 상황이 있지 않겠어요. 사망도 있겠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거나, 이혼으로 아이 양육을 기피한다거나, 질병으로 장기간 입원을 한다거나… 이럴 때 아이가 갈 곳은 ‘시설’밖에 없더라고요. 시설보다는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아이를 보살피자는 것이 가정위탁이고, 아이를 여러 가정으로 연계하는 것이 가정위탁지원센터의 일이죠.”
한국이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가입한 것은 1991년, ‘시설보다는 가정위탁을 활성화하라’는 협약의 권고안이 온 것은 2000년이다. 강진희 씨는 부산 가정위탁지원센터 소장이다. 부산에서만 2003년 이래 1000여 명의 아이가 ‘센터’를 거쳐갔다. ‘가정위탁’은 친부모 가정으로 되돌아가는 것까지를 목표로 한다. 아이는 이별을 두 번 경험하는 셈이다.
“아이가 위탁가정에 갈 때 친부모님이, 낳기만 하고 부모 역할을 못해서 미안하다, 버리는 게 아니다, 잠시 떨어져 있는 거다…하며 우시고요, 1~2년이 지나 아이가 친가정에 되돌아 갈 때 위탁부모님이, 아이고 내 자식이라고 하고 키웠는데… 하며 안타까워서 우시고요.”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의 아이를 거둬 키우는, ‘위탁부모’라는 이름의 사람들. 우리 시대 대표적인 ‘비범한 모성’이 아닐까. 이윤미 사회복지사를 따라 최현자 씨 집부터 들렀다. 4명의 아이를 거뒀다가 2명은 친부모에게 돌아갔고 지금 2명을 돌보고 있다. 원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와서 올해 중학 3학년이 됐고, 6학년 헌이는 지난 4월에 왔다. 왜 팔자에도 없는 남의 아이 엄마로 살고 있는 것일까.
“돌이켜보면 여고 시절부터 ‘시설’을 찾아다녔어요. 그때 보람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집에서 버스를 타고 가면, 경남 김해시에 큰 고아원 시설들이 있었어요. 대학 때도 계속 다녔죠. 혼자서, 또 친구들 하고. 아이들 만나고 ‘봉사’ 하는 것이 좋아서….”
그러니까 40여 년 전, 여고생 때부터 이미 남달랐던 사람이다.
“간호대를 나와 간호사로 일했거든요. 어느 날, ‘한 번뿐인 인생인데, 좀 더 보람 있는 일은 없을까?’ 싶었어요. 생각 끝에 병원을 그만두고 영아원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저는 아이들을 늘 우리집에 데려왔어요. 퇴근할 때 데려와 출근할 때 데려가고. 느낀 게, 아이들이 ‘시설’을 얼마나 잘 아는지. 시설 문 앞에 가면 없어지는 거예요. 저 산 쪽으로 뛰어가고 있어요. 네다섯 살밖에 안 되는데, 안에 들어가기가 싫으니까….”
아이들은 언제나 밖에 나오는 걸 원했다는 것이다. 개별적인 사랑이 전혀 없는 곳이 시설이라고 했다. 복지 선진국, 특히 호주는 시설을 철폐하고 보호가 필요한 아동은 모두 가정위탁을 한다고 했다. 집에 온 지 5년 된 원이 이야기를 들었다. 친엄마는 생후 2개월 때 가출했다고 하고, 할머니 밑에 있던 아이다.
“처음 왔을 때 선생님 말씀이, 학습 능력이 1학년밖에 안 된댔어요. 원이는 결손 가정의 문제를 죄다 가지고 있었어요. 완전히 몸에 배었달까요. 돈 주면 피시방 전전하고…. 초반엔 제가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고심 끝에 얘가 잘할 수 있는 운동을 시켰어요. 사춘기가 되면 걷잡을 수 없겠다 싶어 예방 차원에서… 테니스 선수로 등록 했는데, 결과가 좋아 중학교도 특기생으로 갔어요.”
최현자 씨 집의 아래층에는 돌봄이 필요한 외로운 노인들이 기거하는데, 원이가 할머니들의 베개를 뒤져 돈을 훔치기도 했단다. 그럴 때는 매도 많이 들었다.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이가 많이 바로잡혔을 성싶단다. 할머니가 할아버지한테 구타당하는 것을 보며 자란 아이다. 아이가 직접 경찰에 신고할 적도 있단다. 상처가 많은 아이다. “제일 만만하니까 저한테 막 따지고 드는데,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도 있겠다, 솔직히 이런 생각까지 해요. 같이 있는 6학년 아이는 전연 안 그렇거든요.”
최현자 씨는 가족상담소를 운영하는, 아는 교수님을 찾아가기까지 했다. “말씀하시기를, 시설이나 애 아버지한테 보내라, 왜 네가 고생을 하느냐, 열두 살에 너희 집에 왔으면 나쁜 습성이 12년 동안 배었는데, 고치려면 12년이 더 걸린다, 빨리 보내는 게 현명하다…. 상담소를 나오면서, 딴살림을 차린 친아빠란 사람은 애를 완전 포기한 상태고, 우리집을 떠나 시설에 가면, 과연 아이 장래를 생각할 때 어느 것이 낫겠느냐,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 또 포기가 안되는 거예요. 단 1%의 희망도 도무지 없다 싶을 때까지는 원이를 길러야 되겠다….”
최현자 씨 남편은 목사라고 한다. 신앙을 가진 부부다. “돌아간 아이, 집에 있는 아이를 위해 늘 기도한다”고 한다. 사실상 아이와 거의 투쟁을 하고 있는 위탁부모다. 위탁부모 자조모임의 회장님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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